[글로벌 리포트] 美 경제 떠받치는 '셰일發 화학혁명'… 전세계서 공장 몰려든다

입력 2018-09-16 17:06  

원가 대폭 절감…新 제조업 시대 개막

사우디 대표 석유화학기업 '사빅'
美 유화플랜트 건설 계획 내놔
롯데케미칼·대림산업 등도 도전장

기존 원유서 제조하던 에틸렌
셰일가스선 제조비용 반값에 생산
싼 원료에 '트럼프 감세'도 한 몫

전기차 배터리·소재 등 무궁무진
화학 업계 판도 바꿀 '태풍' 성장



[ 오춘호 기자 ]
사빅(SABIC)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적 석유화학기업이다. 이 회사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 대단위 석유화학 콤비나트(집적단지)를 2025년까지 사우디에 건설하기로 했다. 중국에도 유화 플랜트를 지을 예정이다.

그런 사빅이 미국에 유화 플랜트를 건설하는 계획을 먼저 내놨다. ‘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미국에서 생산해 미 시장에 내놓고 세계 시장에도 수출한다는 구상이다. 원료는 미국산 셰일가스다. 사우디로선 과감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올해부터 5년간 약 500억달러를 투자해 2022년 공장을 가동하는 게 목표다. 연간 180만t 분량의 에틸렌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미국에서 에틸렌을 가장 많이 만드는 다우케미칼보다 생산량이 많다. 사빅의 이 도전장에 미국 엑슨모빌도 가세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

사빅뿐만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석유화학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느라 난리다. 일본의 미쓰비시와 신테크, 미쓰이화학, 대만의 포모사그룹,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솔, 프랑스의 토탈 등 웬만한 석유화학기업들은 미국 남부 텍사스 인근에 화학 플랜트를 짓고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이면 본격적으로 화학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롯데케미칼과 대림산업 등 한국 석유화학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말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셰일가스 중 에탄을 분해해 에틸렌을 만드는 에탄크래커 공장(ECC)을 완공한다.

다우케미칼과 듀폰이 합작해 세운 다우듀폰은 지난해 말부터 연간 15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엑슨모빌도 독자적으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 화학협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총 333개의 화학 프로젝트가 미국에서 추진되고 있다. 주로 공장 신설과 증설이다. 투자금액만 2014억달러에 달한다. 이미 절반(53%)의 프로젝트는 투자가 끝난 상태고 41%는 계획 단계에 있다. 주목되는 것은 이 가운데 68%가 외국 기업들이 직접 투자했거나 미국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진출한 사업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내 설비투자의 절반은 화학 플랜트였다. 올해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4.2%(연율 기준) 증가한 것도 화학산업의 활발한 설비투자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된다. 캘 둘리 미국 화학협회 회장은 “셰일가스가 미국 제조업 성장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고 말했다.


제2의 화학혁명 붐 일어

2000년대 들어 미국 화학업체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생산 과잉에다 아시아 기업들의 잇단 공세로 미국 공장들은 줄줄이 폐쇄됐고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일부 기업들은 미국에서 벗어나 중동과 아시아로 거점을 옮기기도 했다. 2008년 일어난 세계 금융위기는 화학업체들을 더욱 옥좼다. 2008~2009년 텍사스주 걸프지역에서만 12개의 화학 플랜트가 문을 닫았다. 세계 최대 화학업체인 다우케미칼은 6개 공장을 폐쇄하고 전 세계 5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네덜란드의 리온델바젠은 미국에서 파산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셰일가스 혁명이 일어났다. 셰일가스는 퇴적암의 한 종류인 혈암의 미세한 틈에 끼여 있는 천연가스다. 이 천연가스에는 난방이나 발전용으로 쓰이는 메탄가스와 에탄가스가 섞여 있다. 에탄가스로는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에틸렌을 만들 수 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 합성수지는 에틸렌의 결합체인 폴리에틸렌에서 나온다. 에틸렌은 원유에서 뽑아내는 나프타 성분으로 생산할 수 있지만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에틸렌은 제조 비용이 나프타 방식의 절반도 채 들지 않는다.

지금 세계의 화학공장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이유다. 셰일가스발(發) 화학혁명이 가속화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대적인 감세 정책도 해외 화학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부채질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35%이던 법인세율을 21%로 대폭 인하한 뒤 화학 플랜트 운영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비용도 낮아지고 있다. 전력회사들이 발전용 가스 단가가 낮아진 데다 법인세 혜택까지 받게 되자 싼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투자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된 모습이다.

에틸렌 가격 급락 이끄는 미국

최근 국제 유가는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에서 에틸렌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 에틸렌 공장들이 제품을 본격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현물시장에서 에틸렌 가격은 t당 265~270달러로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초에 비해 50% 떨어졌다. 이 같은 가격경쟁력은 폴리에틸렌도 마찬가지다. 폴리에틸렌은 펠릿이라는 고체 알갱이 형태로 수출된다. 생산량의 40%는 미국 시장에서 소비되지만 60%가량은 높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해외 시장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은 화학 소재 수출국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미국이 화학소재를 수출하면서 반사이익을 보는 나라들도 생겨나고 있다. 싱가포르는 환적항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플라스틱 수요가 많은 지역은 아시아 국가들이다. 아시아 국가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각종 비닐류와 플라스틱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세계 폴리에틸렌 수요는 연간 5% 증가해 올해 1억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디 슈만 엑슨모빌 부사장은 “플라스틱산업은 역동적인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첨단 기능성 소재도 발전 전망

외국 기업들이 에틸렌과 폴리에틸렌만을 노려 미국 투자를 늘리는 것은 아니다. 다른 화학제품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만한 고분자 신소재 개발이 미국에서 활발한 것은 이 같은 흐름과 무관치 않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당장 이 분야에서의 새로운 화학소재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미쓰비시케미컬은 의치나 콘택트렌즈를 만드는 아크릴 수지의 원료인 메타크릴산메틸(MMA)을 생산하는 신공장을 미 텍사스주에 건설할 계획이다. 원유보다 천연가스를 이용해 생산하는 것이 가격을 3분의 1가량 낮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베흥산도 전기차 배터리 재료에 사용하는 탄산디메틸(DMC)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DMC는 리튬이온 전지 제조에 필요한 전해액의 원료로 천연가스를 이용해 더 싸게 조달할 수 있다. GM과 테슬라가 전기차(EV) 시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는 만큼 미국 내 전지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점도 고려하고 있다.

셰일혁명은 화학업계 전체에 강력한 태풍을 몰고 왔다. 이 혁명으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계 석유화학업체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셰일이 불러온 화학산업 변화는 각 기업에 전환기적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셰일혁명을 한발 앞서 이용하기 위해 화학기업들이 미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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